A라고 하는 이들은 사랑받길 원해 이곳저곳 추파를 던지고 다니지만, 가장 가치있는 이성의 사랑을 받길 간절히 바란다. 또 B라고 하는 이들은 눈에 보이는 피상적인 것들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겉모습으로만 본 판단에 빠져들기 때문에 내면조차 볼 기회를 놓치고 만다.
A들의 추파에 빠진 피상적으로만 보는 B들은 이내 자신의 열정에 취해 정신없이 A에게 이용당하고, 이러한 B를 이용한 A는 자신이 이용한 B에게서는 어떠한 가치도 발견하지 못한다. 갈증을 적시면 우물가를 떠나고, 과즙을 짜내면 쓰레기통에 버려지듯이.
그리고 B에게서 모든 것을 얻어낸 A는 자기 주변엔 왜 가치있는 이성이 없는지에 대해 실망한다. 이 실망감은 '왜 이런 사람들만 자신을 사랑할까'라며 A자신의 가치를 판단하게 되고 이내 우울해진다.
A는 자신에 대한 어떤 열등감 때문에 자신의 가치를 타인에게 맡긴다. 그들은 자신의 가치를 확신할 수 없기때문에 타인에게서 동의를 구하는 것이다. 타인에게서 A자신이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동의를 얻어내면 이내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은 것이 되니, 동의를 준 타인에게 볼일은 사라진다. A는 자신이 열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열등한 자신을 사랑하는 B를 자신보다 더 열등하다고 생각하게 되고 A의 관심은 다시 다른 이들의 동의 구하기로 떠난다.
B는 눈에 보이는 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기 때문에, A의 추파를 단순하게 생각한다. B는 A의 추파에서 작은 희망을 발견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키워나간다. B는 내면과 이면을 볼줄 모르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으로 판단해서 항상 문제를 긍정적으로만 생각하게 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마음은 추파를 던지는 A에게 쏠리게 된다. B는 마음이 허한 것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열정을 채울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A의 추파는 B의 열정을 쏟아내기에 적절한 목적으로 자리잡게 되며, 목적을 이루기위해 정신없이 B 자신의 마음을 조절하지 못하게 된다. 모두 쏟아낸 B의 마음은 A가 가져갔기 때문에 A에게 더욱 집착하게 되고, 이것을 알아차린 A는 더 이상 얻어낼 것이 없기때문에 B에게서 더욱 멀어지기 시작한다. A가 완전히 B의 곁을 떠나면 B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게 되는데, 정신을 차렸을땐 이미 모든것을 주었을 때다.
A는 열등감 때문에, B는 나약함 때문에 위와 같은 문제를 만들어낸다. 손바닥도 부딪쳐야 소리가 나듯 둘다 좋은 의도로 서로를 바라보지 않은 것이며, 오로지 자신의 성취욕을 위해 행동했을 뿐이다. A는 사랑 받기위해, B는 사랑을 얻기위해. 그리고 그것을 성취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기 위해.
뭐 이렇게 행동해서 정말 가치있는 이성에게 사랑받을 수도있고,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성취욕을 통해 시작한 인연은 그 시작부터 어긋났기 때문에 연인간의 교활함의 투쟁은 계속 될 것이다.
- 2012/05/20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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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5/13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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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지혜롭게 사랑하라'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럼 지혜롭게 사랑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지혜는 무엇이고 사랑은 무엇이며, 과연 둘은 공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지혜라 함은 본래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정확하게 판단해서 분별력있게 대처하는 기술을 말한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지혜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지혜는 일종의 처세술이고 꾀이며 계략이기 때문이다.
그럼 사랑은 무엇일까? 보통, 사랑은 누구를 흠모하는 마음이며 성적으로 끌리는 마음을 뜻한다. 하지만 이 뜻은 욕망이라는 의미가 사랑이라는 단어로 변질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랑은 욕망이 아니며 그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상태이고, 아무 편견없이 바라봄을 뜻한다. 사랑은 보상도 없고 비교도 없으며 갈등도 없고 슬픔도 없는 이해타산도없는 그런 상태를 말한다.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을 무엇과 비교하고, 보상을 바란다면 그것은 누군가를 위한것이 아닌 자신만을 위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슬픔이 생기는 이유는 처음부터 사랑이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지혜와 사랑이 과연 공존할 수 있을까? 지혜와 사랑은 완전히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럼 '지혜롭게 사랑하라'라는 말이 과연 가능할까?
어떤 이는 사랑이 없고 지혜만 있으면 그것은 협잡이며, 사랑만 있고 지혜가 없으면 어리석음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랑이 없고 지혜만 있으면 자신의 이익을 취하기위해 지혜를 가장한 말들만 지껄일 뿐이고, 지혜가 없이 사랑만 있어서 누군가를 위해 죽더라도 그것은 개죽음에 불과하다.
지혜와 사랑은 서로 상반되는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하늘과 땅이 있고, 손등과 손바닥이 합처져 손이 되듯, 동전의 양면이 합쳐 가치있는 동전으로 완성되 듯 지혜와 사랑은 공존되어야 하는 것일까?
확실히 지혜로운 사람의 사랑은 교묘하고 유혹적이다. 그들의 사랑은 조율이 가능하다.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그들은 자신또한 사랑하기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완전한 만족과 사랑을 보여주지 않는다. 열정에 자신을 내맡기지도 않으며, 안주하려고도 하지 않고 어떠한 상황에서든 유유히 자신을 더 높일 줄 안다. 본래 유혹이라 함은 타인을 이끄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사랑을 전적으로 보여주기 보다, 타인의 사랑을 유도한다.
사실 지혜로운 사람의 이러한 면은 타인을 존중함에 있다. 자신의 사랑이 중요하듯, 타인의 사랑도 중요하다고 생각함에 있으며, 부담을 주려고하지도 않고 참을성있게 상대방이 마음을 열길 기다린다. 물론 기다릴때도 맹목적이지 않으며 언제든 빠져나갈 준비를 한다. 그들은 타인만큼 자신또한 존중하기 때문이다.
- 2012/05/03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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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4/2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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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식은 왜 갈등하는 것일까?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려고한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살펴보려고한다.
요새 아이들은 힘들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오로지 공부에만 매진하고 뭐 하나 여유를 가지기 힘들다. 가장 편안해야할 집에서 조차 편안하지 않고, 가족들과 친척들은 공부잘하냐, 몇등이냐, 공부했니 라는 질문을 한다. 아이가 객관적으로 공부를 잘한다면 그 아이는 자신감있게 그렇다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말할 때 일종의 기쁨을 느낄 것이다. 반면, 공부를 못하는 아이라면 저 말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지겨운 말로 들릴 것이며, 자신이 자신감 있게 대답하지못하는 것을 보며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다. 이러한 면들을 잘 살펴보면 이것들은 일종의 억압이고 폭력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기쁨을 느낀 아이이건 부끄러움을 느낀 아이이건 둘다 어떤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어떤 부담이냐하면, 공부를 잘하므로 인해 기쁨을 느낀 아이는 공부를 못하게 되어 가족에게 비판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겪지 않기 위해 억지로라도 공부에 매진하려고 할 것이고, 공부를 못하므로 인해 부끄러움을 느낀 아이는 그 자체로 자괴감을 느끼기 때문에 그 자괴감을 이기려고 기를 쓸지도 모르고, 아니면 자괴감을 이기지못해 삶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자 이제 여기서 이러한 감정을 부모가 자식과 같이 느끼게 된다면, 그러니까 자식이 공부잘하는 것을 통해 부모가 기쁨을 느끼고, 자식이 공부못하는 것을 통해 부모가 부끄러움을 느낄 때! 갈등이 시작된다. 이제부터 부모는 자식을 투자개념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부모로써 내가 자식한테 얼마만큼 학원에 보내고 먹이고 뭘 해줬는데, 자식이 부모가 투자한 만큼의 기대치를 달성하지 못할 때 자식을 압박하기 시작한다. 그러한 압박이 자식한테 얼마나 폭력적인지는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은채 자식에게 온갖 부담을 쥐어준다. 그렇다면 왜 부모는 자식을 압박하나? 투자라는게 뭔가? 투자는 왜 하는 것이고, 투자를 함으로써 뭘 기대하는 것일까? 우리가 무엇인가 투자할 때 우리는 항상 우리의 이득을 기대하지 않나? 그런데 그 이득이 사라지거나, 기대치를 달성하지 못할 때 우리는 실망한다. 이러한 관계를 부모는 자식에게 똑같이 적용시킨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는 부모와 자식의 갈등을 조장할 수밖에 없으며 둘다 삶을 피폐하게 만들 뿐이다. 부모는 자식을 닦달하고 자식은 그 닦달에 지치거나 반항할 것이거나 둘중 하나일 것이다. 아니면 이용하거나! 재미있는 사실은 부모 자식간에 투자관계를 없앴을 때, 자식이 부모에게 돈을 받지 않을 때 부모는 자식에게 어떠한 잔소리도 하기 힘들어진다는 사실과, 자식은 부모에게 어떤 기대치를 달성할 필요가 없기때문에 부담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둘의 관계는 아주 유해지거나, 아주 무시하거나 둘중하나다. 투자관계시절 얼마만큼 자식을 압박하고 부담을 주었느냐에 따라서, 덜주었다면 유해질 것이고, 심했다면 무시하는 것이고.
이런 문제에 대해 지인들과 이야기 나눈 적이 있는데 각각 자신이 속한 가정 스타일이 달라서 재미있었다. 투자하는대신 압박하거나, 자유롭게 하는 대신 스스로 살거나.(집세도 냄) 하지만 다들 자식투자에 대해 기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놓아서 아쉬웠었다. 어쩔 수 없는 건가? 나는 아직 자식이 없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내가 자식에게 뭘 주고 그것을 거두어들이고자 할 때 나와 자식간의 관계가 악화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 이러한 앎 속에서도 내가 그런식으로 자식을 대한다면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못했으며, 자식을 참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도 없는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p.s 위에서 말한 공부는 취직이 될수도 있고 좋은 대학이 될 수도 있고 결혼이 될 수도있다. 성인되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 2012/04/24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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